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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톡톡크리스찬 #80 정욕(2010년7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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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한신 댓글 0건 조회 5,398회 작성일 10-08-30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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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CBS 방송 - 월요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2010년 7월 26일 방송분 준비

주제 : 7가지 죄악 "정욕"
 


이 글은
고려신학대학원 기독교 윤리학을 가르치시는 신원하 교수님의 죽음에 이르는 7가지 죄악이라는 그 말씀(2004년 3월호)에 연재된 내용과 기독교 사상의 기독교 사상 "죽음에 이르는 일곱 가지 죄"은 기독교사상(2010년 3월호)의 부분을 발췌하여 정리한 글입니다.
 

▲ 들어가면서
  요즘 같은 더운 여름에는 몸의 노출이 다른 어떤 계절보다 많습니다. 그러면서 자의든 타의든 여러 가지 유혹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이런 작금의 문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음란입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속에 정욕이 불 일으듯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정욕은 일곱 가지 죄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죄입니다. 오늘날 정욕은 한층 더 대중적으로 우리에게 접근합니다. 성은  은밀하고 사적인 영역에서 소통하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하면서 이제는 대중적인 오락이 되었습니다. 또한 모든 사회 전반에 성에 중독되어 있다시피 할 정도로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이기에 돈과 결부하여 성이 경제, 예술, 문화 등 사회 전 영역에 침투되어 있고, 만일에 성이 제거된다면 현대 사회는 경제적 대 공황 상태를 가지고 올 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 현대 문화와 몸의 종교
   아름다운 몸매는 현재 거의 우상의 자리에 와 있습니다. 옛 그리스 사람들이 여신 비너스를 숭배하는 것처럼 이 시대도 아름다운 외모와 성적인 몸매를 숭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날씬함과 성적 어필은 곧 능력과 경쟁력 즉 소위 스펙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사회는 성적 매력이 없는 것은 무능하고 태만한 것으로 여깁니다. 뚱뚱해서 성적 매력이 떨어지는 것은 열등감과 수치감을 넘어 죄책감을 안겨 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형과 다이어트 등 소위 몸만들기에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일반인들은 안도감, 자신감, 낙오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심리적 보상감 등으로 아름다운 외모가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좀 더 젊게 보이고, 건강해 보이며, 아름답게 보이고, 육감적으로 보이기 위해 즉 성적으로 어필(sex appeal)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결국 정욕으로 이어집니다.

▲ 육체, 성, 성욕, 그리고 정욕
  성적 욕구를 갖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자연스럽게 남성이 아름다운 여성을 보고 끌리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입니다. 성욕은 결혼과 가정을 이루는 것과  자신을 보존하고자 하는 본성임과 동시에 사회를 존속 유지시키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기독교도 성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 경건한 후손과 공동체를 위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어느 종교보다도 몸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신 성육신, 예수님의 부활, 그리고 천국에서 거룩한 몸으로 부활 교리와 믿음들은 몸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육체적 욕망과 그로 말미암는 쾌락은 모두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허락하신 선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육체적인 욕망과 쾌락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인간의 지나친 욕심으로 나아가게 될 때에 정욕으로 변질됩니다. 이  정욕은 성숙이 아닌 자기쾌락과 자아만족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이것은 마치 금방 색이 바래고 말라버리는 잎과 같습니다. 이 정욕은 오직 현재 자신의 감정과 자기만족에만 집중합니다. 그리고 정욕은 때로는  육체보다 정서적 욕구를 충족의 동기로 시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기혼자의 경우 , 부부관계가 피폐해져 있을 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정서적 안정을 누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정욕은 육체적 쾌락, 정서적 애틋함, 짜릿함을 얻으려하고 이것을 서로 교환하는 것입니다.

   4세기 사막수도사는 에바그리우스는 정욕은 잔인한 죄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만족을 위해 다른 사람을 탐하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상대방을 인격으로 보지 않고 물체로 보는 것입니다. 정욕은 성폭력과 형태가 다르지만 자신의 성적 만족을 위해 상대의 인격을 무시하고 유린한다는 점에서 그 격이 유사하게 잔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C. S. 루이스도 인간이 내적 세계가 황량하고 삶이 냉랭하고 허전할 때가 성의 유혹은 훨씬 강력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기쁘고 일이 잘 풀려서 술을 마실 때 보다, 삶이 무료하고 낙이 없어 술을 찾게 될 때 훨씬 더 깊이 취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음행사건도 어떤 의미에서 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전장에 나가지 않고 궁에서 할 일이 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게 되면서 정욕에 빠지게 됩니다. 특별히 할 일이 없고, 삶에 목표가 없고, 기쁨이 없을 때,  정욕은 더 치명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 정욕의 모습

성경에 나오는 보디발 아내를 통해 정욕의 성격을 들여다보면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정욕은 성적 상대를 원하지만 동반자 의식은 없는 육체적 욕구를 추구합니다. 이것은 남편과 아내의 서로에 대해 갖는 성적 욕구와 다르고 또 추구하는 바도 다릅니다. 상대방을 인격적인 상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욕은 오직 상대방을 육체적 쾌락과 만족을 얻게 하는 대상으로 생각할 뿐입니다. 성경에 이 보디발의 아내는 준수한 요셉의 모습에 끌렸고,  그 요셉과 육체적 관계에서 자신의 정욕을 채우려 했을 뿐이지,  그 이상의 어떤 인격적 교제, 나눔은 생각도 없었습니다.

둘째,  정욕은 종종 현실을 도피하는 방편으로 사용되어집니다. 높은 신분을 지닌 남자와 결혼하고, 많은 종과 재산을 소유한 이 보디발의 아내는 일상적 풍요로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동하고 호기심이 생기고 급기야는 그것을 손에 잡고 싶은 마음이 발동했습니다. 남편이 없는 사이 그녀는 젊은 요셉으로 성적인 만족과 일탈을 얻고자 시도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삶에 대한 뚜렷한 목적이나 소망이 없을 때, 더 이상 무엇인가 성취해야 할 목표가 없을 때, 삶이 무료해 질 때 그것을 해소하고 삶의 활력을 얻기 위해 일탈을 꿈꿉니다. 특히 중년이 되어 허전해지고 무료해지게 되면 이런 유혹을 많이 받게 되곤 하는데, 이 때 정욕은 무료함을 해소해주고 새로운 모험의 중요한 방편이 됩니다.

셋째, 정욕은 끈질기게 대상에 집착하고 관련된 자를 애태우게 합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이 자기의 동침요구를 거절하자 성경에는 “날마다 요셉에게 청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욕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는 ‘러스트(lust)’입니다. 이 말의 원 뜻은 어느 대상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욕구라는 뜻입니다. 그 원 의미처럼 보디발의 아내는 성적인 대상인 요셉에게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집착했습니다.

결국 정욕에 사로잡히게 되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고려하지 않습니다. 순간의 정욕을 채우고 성적 만족을 얻는 것에 몰두하게 되는 것입니다. 머리로는 이런 행동이 갖고 올 결과를 지각하지만, 정욕의 불길에 사로잡히면 몸은 그 불로 향하여 뛰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마치 불나방이 불을 보고 뛰어 드는 같이. 이처럼 정욕에 사로잡히면 결국 당사자들은 엄청난 파국을 맞게 되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도 피해를 입게 됩니다. 정욕에 빠져 밧세바를 취했던 다윗은 밧세바를 소유하기 위해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까지 죽였습니다. 다윗은 이 일로 인해 그의 인생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습니다.  나단의 선언대로, 다윗의 아들간의 피 흘림이 계속되었습니다. 백주에 다윗의 침상도 더럽혀졌습니다.  다윗이 이루어 왔던 태평성대의 나라도 그의 삶도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 요셉을 통해서 본 정욕에 대한 처방

  우리는 보디발 아내의 정욕에 대처하는 요셉을 통해서 정욕에 대해서 어떻게 그릭스도인으로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요셉은 강한 신전의식(코람데오)으로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의식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끊임없이 동침하기를 요구했을 때, 아무도 보는 이가 없지만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득죄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불꽃같은 시선이 자기를 감찰하고 계심을 요셉은 늘 의식하면서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의식, 즉 ‘코람데오(Coram Deo)’의 의식이 요셉을 성적 범죄에서 지켜준 가장 강력한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정욕에 대해서 처음부터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그 정욕은 우리 안에 슬그머니 들어와 우리의 의식을 무디게 만들어 결국 삼손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듯이 성도들을 쓰러지게 합니다. 유혹을 받을 때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심판주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 앞에서 나의 모든 것이 선악 간에 드러날 것이라는 의식을 갖고, 강하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둘째, 요셉은 여인의 말을 듣지도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했습니다.
보디발 아내가 노골적으로 요셉의 옷을 벗기려고 하자 아예 그곳에서 “도망”하여 나갔다고 했습니다(12절). 그리스도인들은 위험한 상황과 장소에 결코 자리를 함께하지 말고 피해야 합니다.  수동적이지만 그것이 정욕을 이길 수 있는 가장 최선이 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날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이런 행동은 쉽지 않습니다. 직장과 친구관계 가운데서 이런 의식이 필요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런 문화 가운데 조금 더 건전한 문화를 만들어 가도록 장기적인 마스터 플랜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정욕을 충동질하는 장소, 기회를 의도적으로 피해야 할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복 있는 사람은 죄인의 자리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신뢰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될 수 있는 한 성과 관련한 농담도 삼가야 하겠습니다. 한가한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정욕적인 생각에 빠질 위험이 많습니다.

▲ 마무리
  오늘 우리 사회는 점점 음란해지면서 정욕을 조장합니다. 사탄은 할 수만 있으면 이러한 정욕을 부추겨서 성도들과 교회의 순결과 거룩성을 깨뜨리려합니다. 정욕의 죄는 단순한 죄가 아니라 우리의 몸과 관련된 죄이기에 특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곧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8~19).

  정욕의 죄는 성령을 더럽히는 죄악이기에 그 성격은 결코 일상적인 범죄와는 차원이 다른 범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이런 정욕에서 자신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미혼인 자들은 요셉처럼 신전의식을 갖고 살되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성적 욕구를 잘 절제해 나가도록 노력해 나가야 합니다. 아울러 음란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도록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믿음의 형제들과 함께 보다 건강하고 생산적인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딤후 2:22).

  주안에서 가정을 이룬 성도들은 부부관계에 신학적 윤리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더욱 신경을 쓰고 가정생활에서의 즐거움을 만들어나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아내에게, 남편에게 더욱 관심을 가지고 전인적으로 서로를 배려하고 돌보는 관계가 되도록 함께 애써야 하겠습니다. 또 부부는 자기 몸을 자기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이 주장하는 것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고전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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